남사록(南槎錄)


남사록』은 1601년(선조 34) 7월에 제주에서 발생한 ‘길운절 소덕유 역모사건’으로 인한 불안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제주안무어사로 파견된 김상헌이 제주목사 성윤문의 보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남사록』에는 조정을 출발하여 제주에 이르기까지의 노정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한양과 제주 간의 노정을 헤아릴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또한 제주·정의·대정 삼읍의 지지(地誌) 및 주요 관아의 위치와 방호소 과원 및 귤의 품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지지(地誌)』 『남명소승(南溟小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표해록(漂海錄)』 등의 자료를 인용하여 건치 연혁·풍속·기후·방언·농경·진상·토산·염전·관풍안명환 등 제주도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기(記)·서(序)·제문과 함께 조정을 출발해서 일정을 마치고 왕에게 복명하는 동안에 지은 80여 수의 시도 수록되어 있다.

『남사록』은 당시 제주도의 전체적인 사회상을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효종 4년(1653)에 쓰여진 『탐라지』보다 50여 년이 앞선 제주도의 전반적인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내용을 서술하는 데도 단순히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많은 문헌 자료를 참고하면서 자신의 견해도 나타내고 있어 객관성을 포함하고 있음과 동시에 자작 한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문학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