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소(宗會所) |
![]() 안동김씨종회소는 김시교(문충공파)가 안동 태사묘의 위차(位(次金)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상소하자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권씨와의 위차문제가 폭발하여 극심하게 대립한던중 1767년 경상감사로 재직중이던 문충공(文忠公)파 김이건(金履健) 둘째 아들이자 김영행(金令行)의 손자인 김응순(金應淳)이 부지를 마련하고 모금을 주도하여 태사묘에서 시조의 위패를 모시고와 별도로 봉향하려고 사당으로 건립하고져 하였으나 권씨문중(權氏립門中)에서 같이 헌작하기를 간청하여 기왕에 시작된 일을 취소하지 않고 목적을 달리하여 1770년 안동김씨종회소로 건립했다. 현판은 문정공(文正公)파 김제겸의 다섯째 아들이고 몽와 김창집의 손자인 남원부사를 지낸 김탄행(金坦行)이 썼고 허물어진 담등을 삼당공파 동야 김양근이 보수했다. 그 후 담장과 건물이 훼손되어 1804년(순조 4) 본래 위치보다 조금 아래쪽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1950년 6·25전쟁 때 육군 통신대가 안동김씨종회소에 머물렀는데, 그때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연목과 기둥 일부에 그슬린 흔적이 남아 있다.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