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적--견기--근 염 | 子 | 신(信) | 배(配) | 함창김씨(咸昌金氏) | 묘(墓) | 제단소(祭壇所) 안동시 송현동 사야곡(沙
| | 也谷)
| | 축좌(丑坐) |
| | 十世 |
| | | 十一世 |
| | 근--신--염 승 | 子 | 황(璜) | | 효행으로 정려(旌閭) 하였는데 안동부 서
| | 문밖에 정려비(旌閭碑)가 있었다고 안동향
| | 손사적록(安東鄕孫事蹟錄)에 기록되어있다
| 배(配) | 풍산류씨(豊山柳氏) | 생(生) | 一四六九년 기축(己丑) | 부(父) | 영발(英發) | 외조(外祖) | 예빈경(禮賓卿) 김귀생(金貴生) | 묘(墓) | 제단소(祭壇所) 안동시 송현동 사야곡(沙
| | 也谷)
| | 축좌(丑坐) | | 자료보기 |
| | 十二世 |
| | 신--염--황 존수 | 子 | 승(勝) | 배(配) | 안동권씨(安東權氏) | 부(父) | 경식(敬植) | 묘(墓) | 제단소(祭壇所) 안동부(安東府) 서쪽 송
| | 현동(松峴洞) 사야곡(沙也谷)
| | 축좌(丑坐) |
| | 十三世 |
| | 염--황--승 홍 | 子 | 존수(存水) | 호(號) | 우재(愚齋) | | 시(詩)와 학문이 세상에 알려져 일찍이
| | 상숙(庠塾)을 열어 후학(後學)을 훈도
| | (訓導) 하였으며 상여유수(甞與留守)를 지
| | 낸 철성(鐵城) 이공(李公) 굉(浤)과
| | 문교(文交)를 허락하고 창수(唱酬) 하였
| | 다 이공(李公)이 몰후(歿後)에 추감시
| | (追感詩)를 지어 같이 노닐던 귀래정(歸來
| | 亭)에 게판(揭板) 하였으니 그 시(詩)
| | 는 [지팡이짚고 길을 나서 한가히 귀래정
| | 에 오르니 누정주변에 사람 자취없고 잡초
| | 만 스스로 자라나네(携笻跋涉到閑亭亭院無人
| | 草自生) 문득 당년의 바둑두던 날을 생각
| | 하니 지금 이누정의 북쪽에서 허교하던 그
| | 목소리 들리는듯 하네(却憶當年碁局日至今
| | 軒北有容聲)] 라는 내용이다
| 묘(墓) | 안동(安東) 부(府) 서쪽 송현동(松峴洞)
| | 사야곡(沙也谷)
| | 묘갈명(墓碣銘)은 종예손(宗裔孫) 정한 | | (鼎漢)이짓고 진성이관호(眞城李瓘鎬)가 썼 | | 다 | | 자좌(子坐) | 배(配) | 안동권씨(安東權氏) | 부(父) | 맹의(孟義) | 묘(墓) | 같은둔덕
| 배(配) | 안동권씨(安東權氏) | 부(父) | 보로(輔老) | 묘(墓) | 같은 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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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四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