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十世 |
| | | | 혁--삼근--계행 세상 | 子 | 극신(克信) | | 초간 등재 | 자(字) | 가립(可立) | 생(生) | 一四七四년 갑오(甲午) | | 무(武) 문천(文川) 군수(郡守) | 졸(卒) | 一五四八년 무신(戊申) | 배(配) | 인천서씨(仁川徐氏) | | 숙인(淑人) | 부(父) | 직장(直長) 숙(叔) | 배(配) | 함양박씨(咸陽朴氏) | | 숙인(淑人) | 부(父) | 직장(直長) 수용(守勇) | 묘(墓) | 예천군(醴泉郡) 호명면(虎嗚面) 직산리
| | (稷山里) 직곡(稷谷)
| | 간좌(艮坐) 합폄(合窆) | | 묘표(墓表)가 있다 | 墓碣 | 족손(族孫)청음(淸陰)상헌(尙憲)이 묘갈 | | 명을 썼다 |
| 十一世 |
| | | | 삼근--계행--극신 기량 | 子 | 세상(世商) | | 초간 등재 | 자(字) | 열경(列卿) | 호(號) | 어락정(魚樂亭) | | 서애(西厓) 선생 문집중에 어락정(魚樂亭)
| | 을 제목으로 한 기문이있는데 그 기문에
| | 정자는 화산(花山) 동쪽 기슭 낙동강
| | (洛東江)에 있대어 있다(지금의 정자동)
| | 정자의 주인 김군 세상(世商)은 비록 무
| | 인이지만 효우(孝友)가 남달랐다고 향리의
| |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만년에 이곳에 정
| | 자를 짓고 낚시로 일삼았다. 내가 일찌기
| | 그 정자 이름을 어락(魚樂)이라 지어
| | 주었는데 지금 내가 이정자 밑을 지나가는
| | 데 김군은 이미 고인이되었고 정자는 폐허
| | 가 되어 잡초만 가득하고 뜰에는 오직 두
| | 어 떨기 산국화 피어 있어 꺾으려는 가을
| | 바람만 우수수 불고 가는구나 내가 슬픈
| | 생각을 누를길없어 벽에다 시한편을 쓰고
| | 갔다고 하였다.부군꼐서 어러움을 당하여
| | 정자에 나가지 않았고 정자는 폐허가 되
| | 었다. 정해년 실업리(實業里)로 이전 복
| | 원하였다.
| 묘(墓) | 봉영(封塋) 이실전(失傳) 되어 천추의
| | 한이되었는데 어락정에 자손들이모여 제단
| | (祭壇) 을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가을
| | 어락정 안산(案山) 묘에 제단을 만들었
| | 다
| 배(配) | 영천이씨(永川李氏) | 부(父) | 훈도(訓導) 수경(壽慶) |
| 十二世 |
| | | | 계행--극신--세상 무경 | 子 | 기량(起亮) | | 계사 등재 | 자(字) | 경숙(慶淑) | 생(生) | 一五六六년 병인(丙寅) | | 종사랑(從仕郞) | 졸(卒) | 一六一六년 병진(丙辰) | 배(配) | 영월엄씨(寧越嚴氏) | 생(生) | 무진(戊辰) | 졸(卒) | 경오(庚午) | 부(父) | 치백(致伯) | 조(祖) | 희발(希發) | 증조(曾祖) | 문혜(文惠) | 외조(外祖) | 이동익(李同益) 본(本) 월성(月城) | 묘(墓) | 대동(垈洞)
| | 손좌(巽坐) 상하분(上下墳) | | 묘표(墓表)가 있다 |
| 十三世 |
| | | 극신--세상--기량 학호 | 子 | 무생(茂生) | | 계사 등재 | 자(字) | 군선(君善) | 생(生) | 一六○○년 경자(庚子) 七월 五일 | 졸(卒) | 一六五八년 무술(戊戌) 三월 四일 | 배(配) | 아주신씨(鵝洲申氏) | 부(父) | 술(述) | 조(祖) | 재복(在福) | 증조(曾祖) | 효운(孝運) | 외조(外祖) | 박민철(朴敏輟) 본(本) 밀양(密陽) | 묘(墓) | 대동(垈洞)
| | 손좌(巽坐) 상하분(上下墳) |
| | 극신--세상--기량 시산 | 子 | 무경(茂京) | | 계사 등재 | 자(字) | 치선(致善) | 생(生) | 一五八八년 무자(戊子) | 졸(卒) | 一六四九년 기축(己丑) 五월 十九일 | 묘(墓) | 대동(垈洞)
| | 해좌(亥坐) | 배(配) | 함안조씨(咸安趙氏) | 부(父) | 덕건(德建) | 묘(墓) | 대동(垈洞)
| | 건좌(乾坐) |
| 十四世 |